미국에서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논쟁이 대통령과 주요 AI 기업 최고경영자들 사이의 공개적인 정책 충돌로 확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개발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Anthropic과 OpenAI 등 주요 기업에서는 모델 능력이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안전성 검증과 감독 체계를 개발 속도에 맞춰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AI 개발 자체를 중단할 것인지가 아니라, 기술 발전 속도와 안전장치 구축 속도 가운데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지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중순 아일랜드에서 AI 개발을 늦추거나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미국이 중국보다 AI 분야에서 앞서 있다며 현재의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AI가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사기’로 규정하고, AI 개발과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중국에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AI 분야에서 승리하는 국가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미국의 기술적 우위를 국가전략 차원에서 강조했다.
반면 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는 9월 AI 모델의 능력 향상 속도를 조절하면서 안전성 연구와 평가 체계가 따라갈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이 제안은 단순한 개발 중단보다는 프런티어 AI 기업들이 일정한 검증 절차와 독립적인 평가 체계를 마련해 경쟁 과정에서 안전기준이 뒤처지는 상황을 막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OpenAI의 샘 올트먼과 xAI의 일론 머스크도 아모데이의 문제 제기에 공개적으로 동의했다.
Anthropic은 이후 실제 개발 과정에서도 외부 평가자를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회사는 9월 18일 Accenture와 협력해 프런티어 AI 모델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와 레드팀 활동, 정렬성 평가, 안전장치 검증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Anthropic은 앞으로 5년 동안 이 분야의 역량 구축을 위해 각각 최소 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OpenAI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회사는 8월 고성능 모델의 사이버보안 능력이 높아지면서 모니터링과 통제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 개발 과정의 속도를 일시적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특히 9월에는 새로운 모델 ‘Astra’가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Critical’ 수준의 능력에 도달했다고 평가하면서 개발 과정과 출시 전 단계에서 보다 강력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은 보다 명확하게 기술 개발과 미국의 경쟁력 확보에 맞춰져 있다. 백악관은 6월 AI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사이버보안과 핵심 인프라 보호를 병행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으며, 연방정부가 고성능 AI를 안보 분야에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는 체계를 추진했다. 동시에 해당 행정명령은 AI 모델 개발에 대한 연방정부의 의무적인 허가나 사전승인 제도를 만드는 것을 제한했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9월 29일 한층 선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 정부가 기존의 ‘Artificial Intelligence’ 대신 ‘Super Intelligence’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백악관은 이를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라 미국이 차세대 지능 기술의 선두를 유지하고 경제·과학·안보 분야에서 그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 방향으로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정부가 AI 안전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의 6월 행정명령은 첨단 AI가 국가안보상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명시했고, 사이버보안과 핵심 인프라 보호를 위한 별도의 평가체계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의 정책 논쟁은 ‘AI를 개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는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어느 수준의 안전장치를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가에 더욱 가깝다.
중국과의 경쟁도 이 논쟁을 복잡하게 만드는 핵심 변수다. 미국의 AI 기업과 정부 모두 중국이 AI 분야에서 중요한 경쟁자로 부상했다는 점에는 상당 부분 공통된 인식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개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와, 경쟁이 치열할수록 안전장치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서로 충돌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Anthropic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페이싱(pacing)’을 중국과의 경쟁을 포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AI 논쟁은 기술 발전과 안전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AI를 경제 성장과 국가안보, 중국과의 전략경쟁을 동시에 좌우할 핵심 기술로 보고 개발 속도와 미국의 선도적 지위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Anthropic과 OpenAI 등 일부 프런티어 기업들은 AI 능력이 빠르게 높아지는 상황에서 독립적인 평가와 모니터링, 정렬 연구가 뒤처질 경우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