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조원 PF 자금줄 열린다…50개 사업장 몰린 개발앵커리츠, 첫 투자 초읽기
주거시설 투자 비중 50%에서 70%로 확대…내년 수도권 주택전용 리츠 4000억원 추가 조성
자기자본 20%·토지 100% 확보 등 까다로운 심사 기준…중소 시행사 소외 우려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해 정부가 조성한 1조원 규모의 개발앵커리츠가 본격적인 투자 집행을 앞두고 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온 50개 사업장이 투자 신청에 나서면서 장기간 위축됐던 부동산 개발시장에 새로운 자금 공급 통로가 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11월 초 첫 투자 대상을 확정하고 자금 집행에 착수할 계획이다. 다만 자기자본 비율과 토지 확보 요건 등 까다로운 심사 기준이 중소 시행사들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일 파이낸셜뉴스 취재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공모를 시작한 PF 개발앵커리츠에는 약 4개월 동안 총 50개 사업장이 투자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현재 신청 사업장에 대한 종합적인 적격성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11월 초 첫 투자 대상 사업장을 선정해 자금을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투자 결정에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공공자금뿐 아니라 민간 기관투자자의 자금까지 투입되는 만큼 단순히 투자 속도를 높이기보다 사업의 안정성과 수익성, 자금 회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업의 성패는 단순한 자금 공급을 넘어 부동산 PF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PF 개발앵커리츠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우량 부동산 개발사업에 공공이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자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금융 수단이다. 핵심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출발점인 토지 매입 단계에서 막힌 자금 흐름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행사는 개발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브릿지론을 활용한다. 브릿지론은 본격적인 사업자금 조달에 앞서 토지 매입 등에 사용하는 단기대출이다.
그러나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국내 부동산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PF 부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금융기관들이 신규 대출을 축소했고, 금융당국 역시 부동산 금융에 대한 위험 관리를 강화했다.
그 결과 사업성이 양호한 개발사업조차 초기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이어졌다. 특히 브릿지론 조달에 실패한 사업장들은 토지 확보와 인허가 절차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이는 신규 주택사업 지연과 공급 위축으로 연결됐고, 건설경기 침체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개발앵커리츠를 도입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앵커리츠는 개발사업 초기 단계에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한다. 이후 해당 사업이 본PF 단계에 진입하면 투자금을 회수하고, 회수한 자금을 다른 사업장에 다시 투자하는 방식이다.
한정된 재원을 여러 개발사업에 순환 투입해 정책자금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결국 개발앵커리츠는 단순한 금융지원 상품이 아니라 민간 개발사업의 초기 위험을 완화하고 후속 투자를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목표로 한다.
PF 개발앵커리츠의 전체 조성 규모는 1조430억원이다. 재원은 출자금과 보증부 회사채를 결합한 구조로 마련됐다.
전체 자금의 절반인 5215억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민간 기관투자자 등이 출자했다. LH가 2000억원을 부담하고, 민간 기관투자자 등이 나머지 3215억원을 출자했다. 나머지 5215억원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바탕으로 발행한 회사채를 통해 조달했다.
공공기관의 출자와 보증을 기반으로 민간자금을 결합해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실제 자금 운용은 두 개의 리츠가 담당한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운용하는 '코람코개발앵커리츠'와 한국토지신탁이 운용하는 '케이원개발앵커리츠'다.
사업장별 투자 규모는 토지 매입비의 50% 이내에서 최소 100억원부터 최대 1000억원까지다. 투자 금리는 AAA등급 공사채 3년물 금리에 2.5~3%포인트를 가산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지원 대상도 신규 브릿지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기존에 조달한 브릿지론을 앵커리츠 자금으로 대체하는 차환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금리 대출 부담을 안고 있는 기존 개발사업장에도 자금 조달 구조를 개선할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리츠의 기본 운영 기간은 5년이며, 필요할 경우 최대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번 개발앵커리츠 사업에서 주목할 변화는 투자 방향이 주택 공급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PF 시장의 유동성 회복과 함께 주택 공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현재 개발앵커리츠는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주거용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요 투자 대상은 공동주택과 주상복합, 오피스텔 등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 이른바 '8·13 대책'에 따라 주거시설 투자 비중을 기존 50% 이상에서 7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오피스와 호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비주거시설에 대한 투자 비중은 기존 50% 미만에서 30% 미만으로 축소된다. 부동산 개발금융 지원의 중심축을 주택 공급으로 더욱 명확하게 옮기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년에는 수도권 주택 개발사업에 특화된 별도의 앵커리츠도 조성할 예정이다. 신규 주택전용 앵커리츠의 규모는 4000억원이다.
기존 개발앵커리츠와 달리 수도권 주택사업에만 투자하도록 설계해 정책자금이 주택 공급 확대에 집중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약 1년 6개월 단위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재투자하는 순환 구조를 통해 향후 5년 동안 약 1만가구의 주택 착공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같은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초기 사업자금 부족으로 지연된 일부 주택 개발사업이 다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실제 주택 공급 확대 효과는 투자 대상 사업장의 인허가 진행 상황과 본PF 전환 여부, 후속 민간자금 유입 등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개발앵커리츠는 자금 공급과 함께 국내 부동산 PF의 구조적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그동안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5% 안팎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시행사가 투입하는 자본은 적은 반면 토지 매입부터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금융기관 대출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이 같은 고차입 방식은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 사업 확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금융시장이 경색되면 위험이 빠르게 확산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특히 토지 매입 단계에서 브릿지론이 막히거나 본PF 전환에 실패하면 사업 전체가 중단될 수 있다. 금융기관과 시공사, 투자자 등으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도 커진다.
정부가 PF 사업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려는 이유다.
정부는 2024년 11월 발표한 PF 제도개선 방안에서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을 20%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개발앵커리츠에도 이러한 정책 기조가 반영됐다.
투자 심사 단계부터 시행사의 자본 부담 능력과 사업 안정성을 엄격하게 확인해 과도한 차입에 의존하는 개발사업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개발앵커리츠의 투자 심사 기준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토지 매입가격이 감정평가액과 주변 실거래 사례에 비춰 적정해야 한다. 개발계획 역시 해당 지역의 실제 수요에 부합해야 한다. 사업에 필요한 토지는 100% 확보해야 하며, 사업계획승인도 12개월 이내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도시계획 변경이 필요한 사업은 승인 가능 기간을 18개월까지 인정한다.
여기에 시행사의 자기자본이 토지 매입비의 2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이들 요건은 단순한 가점 항목이 아니라 투자 심사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네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본격적인 투자 심사 단계에 진입할 수 없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사업 추진 가능성이 높고 자금 회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장에 재원을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심사 방식이 실제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시행사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업계에서는 개발앵커리츠가 PF 시장의 자금난을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투자 기회의 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자기자본 비율과 토지 확보 요건이다.
대형 시행사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본력과 금융조달 능력을 갖추고 있어 토지 확보와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하기가 수월하다. 반면 중소 시행사는 사업성이 양호하더라도 토지 매입비의 20%에 해당하는 자기자본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 토지를 100%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충족해야 해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에는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초기 사업자금 지원이 절실한 중소 개발사업장이 정책금융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고려해 자기자본 인정 범위를 일부 확대했다. 기존 납입자본금뿐 아니라 대여금과 현물출자도 일정 기준에 따라 자기자본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최대 5년치 이자비용 역시 자기자본 산정에 포함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형식적인 자본금 규모만으로 투자 적격성을 판단하지 않고 실제 사업에 투입되는 다양한 자금 형태를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진입장벽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기자본 계산 방식이 유연해졌지만 결국 대형 시행사에 유리한 사업"이라며 "중소형 시행사들에게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앵커리츠의 첫 투자 집행은 정부의 부동산 PF 정상화 정책이 실제 개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총 1조430억원의 재원을 조성하고 50개 사업장이 투자 신청에 나섰다는 점은 초기 자금 조달에 대한 개발업계의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신청 규모가 실제 투자 성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과한 사업장이 얼마나 나올지, 투자 이후 본PF 전환과 착공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특히 주거시설 투자 비중을 70%까지 확대하고 수도권 주택전용 앵커리츠 4000억원을 추가 조성하는 정책이 실제 주택 공급으로 연결될지도 주목된다.
공공자금의 안정적인 회수와 민간 개발사업의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시행사에 투자가 집중될 경우 중소 시행사들의 자금난을 해소한다는 정책적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결국 개발앵커리츠의 성패는 투자 규모 자체보다 얼마나 많은 우량 사업장을 실제 착공 단계로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PF 구조 개선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시행사에 실질적인 참여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가 향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이르면 11월 초 시작될 첫 투자 집행이 침체된 부동산 개발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의 : 031-563-2114


